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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 왕의 남자, 연산군이 사랑했던 한 광대에 관한 이야기

by 제제 하우스 2023. 2. 7.

 

연산군이 집권하던 시대의 광대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광대들과 연산군의 열망을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다뤘다.

 

조선 시대 왕이 사랑했던 한 남자와 광대들의 비극적인 운명

장생(깜우성)과 공길(이준기)은 풍자극과 줄타기를 일삼는 광대이다. 장생은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큰 형 같은 사람이고 공길은 지금 봐도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한 남자 광대이다. 그들은 지방에서 뒷 돈 받아먹고 공길에게 이상한 일을 시키던 광대 무리들을 떠나 한양으로 가서 큰 판을 벌이고자 한다. 한양에 도착해 보니 육갑(유해진), 칠득(정석용), 팔복(이승훈)이 벌이는 연극을 보고는 즉흥으로 참여해서 실력으로 그들을 흡수시킨다. 한 패가 된 다섯 광대들은 더욱 자극적인 내용을 위해 왕과 후궁을 가지고 노는 연극을 벌이고 이것이 발각되어 궁으로 끌려가 매질을 당한다. 사형 위기에 처한 이들은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왕에게 공연을 보여줘서 한 번이라도 웃으면 살려달라 말을 한다. 이에 당시 왕이었던 연산군 앞에서 역할극을 벌이는데, 아슬아슬한 임기응변으로 가까스로 연산군의 박장대소를 얻어낸 그들은 이후 궁에 머무르며 연산군을 위한 광대가 된다. 하지만 일부 대신들이 광대를 궁에 들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반대를 한다. 이에 왕이 아닌 대신들을 풍자하게 되고, 극에 너무 몰입한 연산군은 내용을 사실대로 믿어버려 비리를 벌인 대신들을 속출해 낸다. 어느 날, 연산군은 공길만 따로 불러내어 그의 방으로 부른다. 이상한 일을 당할까 걱정했던 공길의 염려와 달리, 인형극을 하며 논다.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인형극을 너무 좋아한 연산군과 그를 바라보는 공길 사이에는 기묘한 기운이 흐른다. 이후, 연산군은 장녹수(후궁)에 대한 관심보다 공길에 대한 관심이 커져간다. 이후, 광대들이 보여주는 연극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연산군은 후궁들이나 대신들을 죽여 나간다. 이에 대신들은 사냥놀이라는 핑계로 공길에게 화살을 겨누지만 이를 알아챈 육갑이 대신 맞고 사망한다. 육갑의 사망에 칠득과 팔복은 궁을 나가자고 재촉한다. 궁을 나가기 전, 장생은 왕의 처소 앞에 줄을 치고 올라서서 남자와 붙어먹은 왕이라며 비난의 연극을 벌인다. 이에 분노한 연산군은 장생을 향해 활을 쏘고 피하려던 장생이 바닥에 떨어지고 형벌로 두 눈을 잃는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 탓이라 생각한 공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들이 준비한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생이지만 줄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프로이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공길의 목소리를 따라 둘은 줄을 타기 시작한다. 이때 폭동과 부조리함을 일삼던 연산군을 폐위하기 위한 무리들이 문을 박차고 우르르 달려온다. 신명 나게 놀아보자며 줄 위에서 뛴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시대를 초월한 동성애를 가장 성공적으로 그려 낸 현대 작품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의 소재는 남자 간의 동성애이다. 심지어 왕과 광대의 사랑이라 성별과 신분을 뛰어넘었다는 획기적인 설정이다. 사실 동성애라는 소재는 요즘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흥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때 당시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의 행보는 가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만하다. 영화 자체가 퀴어 영화라고 분류될 뿐만 아니라 제목도 왕의 남자이기 때문에 분명 남자들의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연산군은 공길에게 사랑을 느꼈다기보다 관심을 갈구했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연산군의 성장과정을 알아보면 이해하기 쉽다. 연산군은 어려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혼나고, 핍박당하고, 구박당하는 일상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즉위 후 연산군을 폭군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속으로는 진정한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친절하고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형극을 보여준 공길에게 애정을 느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동성 간의 사랑이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 그런 장면이 뚜렷하고 자극적으로 연출되지 않아 국민들의 정서에 적합했던 것이다. 오히려 오랜 시간 공길을 챙기고 그의 행적을 살피는 장생이 공길을 사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양반에게도 팔던 몸을 왕이라고 못 팔겠냐'라는 말처럼 왕의 처소에 다녀온 공길에게 질투 아닌 질투와 비아냥을 드러낸 장면에서 장생이 공길을 많이 좋아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 후기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일부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 이쁘장한 외모를 가진 남자 광대를 실제로 궁으로 불러들여 연산군 앞에서 공연을 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만 사실이고 왕과 공길의 사랑, 육갑의 죽음 등은 가상으로 설정한 연출이다. 당시 연산군이 가졌을 심리적 불안감, 애정과 관심에 대한 결핍 등 시대적 배경에 상업 영화의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것이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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